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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지우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글쓴이 : 박재수 날짜 : 05-03-17 22:30     조회 : 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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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
* 주저 앉음의 의미
-영화를 즐기러 온 극장의 어둠 속에 부동 자세로 서서 애국가를 경청하도록 강요받는 현실은 시적 화자에게 '피곤하고 역겨울'뿐이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떼들의 영상을 보며 시적화자는 이 폭압적 현실을 벗어나 멀리 떠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애국가가 끝나고 새떼들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이 때 화자는 어쩔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을 인식하고 좌절감에 주저않고 만다.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황지우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수록된 작품이다. 본 시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작가가 현실적 삶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 그리고 피곤하고 역겨운 현실을 탈피하여, 좀더 바람직하고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시상 전개의 축은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지만' 떠나지 못하고 '주저 앉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흰 새때의 비상과 같이 화자는 70~80년대의 암울하고 억압적인 군사 정권의 현실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은 강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화자의 삶은 애국가 노래 가사 속의 '삼천리 화려 강산'과 거리가 멀다. 애국가 노래 가사가 끝나기도 무섭게 서둘어 자리에 주저 앉는다는 표현은 현실에 대한 화자의 강한 절망감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성격 : 낭만적, 현실 비판적
▶구성 : ① 애국가 경청(1-2행)
② 이상향을 향한 새들의 비상(飛翔)(3-10행)
③ 시적 화자의 이상과 현실적 좌절(11-20행)
▶제재 : 새
▶주제 : 암울한 현실적 삶에 대한 좌절감
▶특징: ①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암시 ② 화자의 처지와 심리를 새와 대비시켜 제시함.

80년대의 시가 세칭 민중시와 형태 파괴시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때, 그 두 가지 흐름을 하나로 통합시키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시인이 바로 황지우다. 그가 이질적인 두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던 바탕은 물론 섬세한 서정성이다. 그는 민중시 운동이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던 극단적인 이념 추구 방향뿐 아니라, 순수시의 정서적 안일성까지도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다양한 실험적 기법을 사용, 언어의 힘을 최대로 활용한다.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쓰고자 했던 그가 바라본 80년대는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찬 곳이자, 차라리 초월해 버리고 싶은 환멸의 공간이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현실 인식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폭압적 현실 상황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을 풍자라는 수법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풍자라는 면에서는 당대의 그 어떤 시도 달성하지 못한 극적인 야유 효과를 갖고 있으며, 그 효과의 실체는 신성 모독에 있다.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환멸적 인식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자괴감은 극장에서의 애국가 상영을 매개로 형상화됨으로써 충격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관람석의 불이 모두 꺼진 캄캄한 극장은 바로 암울한 현실 상황을 표상하며, '삼천리 화려 강산'을 배경으로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관객들은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맹목적인 삶을 따라야 했던 당시의 민중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한 사람인 화자는 '삼천리 화려 강산'을 떠나 줄지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극장 화면의 새떼들을 보며, '한 세상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우울한 소망을 갖는다. 그 같은 소망도 잠시일 뿐, 애국가가 끝나는 순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화자는 더 큰 좌절감에 빠져든다. 여기서 '삼천리 화려 강산'이란 풍자의 대상인 조국이 더 이상 '화려 강산'일 수 없다는 역설로 쓰이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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