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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세계 신인문학상 당선작 -항 해 외 4편''
  글쓴이 : 박재수 날짜 : 02-09-24 15:57     조회 : 3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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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 해

어둠의 기억을 지우며
승선한다
닻을 올리고
부서지지 않는 꿈의 깃발 휘날리면서
음흉한 파도 사이를 헤쳐 나간다.

녹슨 어둠이 사라질 때
바다는 갓 건져올린 아침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더 물러설 수 없는
난간 아래
자맥질한 파도의 노래
길은 없어
앞으로 앞으로 갈 뿐이야

가면을 쓴 낯설은 도시
먹빛 뚜렷한 곳마다 둥지 튼
포구
잔기침을 하며 앓고 있다
하선을 유혹하는
지붕 곳곳의 노래
지친 선원의 갈증을 부른다
헤픈 웃음을 흘리는
위로받지 못한
슬픈 영혼들
가슴은 깨어 있다네
부르지 않아도 될 것을

파도의 소용돌이 멎고
머물 수 없는 뱃길
또다시 닻을 올려지고
태양이 황금빛 그물을 투망할 떄
배는 천천히
태양의 자궁 속으로 끌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따스함에
긴 여독 달래며 항해하는 힘찬
뱃고동 소리
출항의 아침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은빛 날개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새들의 나라



여기는 날지 못할 닭날개라도 겨드랑이에 붙이고 싶은
욕망의 나라
날지 못하면 죽는다
글을 깨우치면서 전쟁이다
퍼드득거리는 날개짓의 실습
머리 싸매고 날으는 법을 배운다
날지 못하면
경쟁의 겨드랑이를 짖이겨서라도
먼저 간다
겨우 퍼드퍼득거리며
출근길 도로가에 아무도 치워주지 않는
날개의 부서짐
비둘기는 왜 바퀴에 쓰러졌는가
잽빠른 검은 바퀴도
빠르게 날면 피할 수 있다
가령 신호등이나 보호막을 설치하면 안될까
의문을 가져도 안된다
적응하지 않으면 죽는다

모두들 날개를 찾는다
겨드랑이 뿐만 아니다
팔도, 다리도
온통 깃털로 덮여 있다
먼저 날기 위해 섬뜩한
깃털의 전쟁
하늘은 온통 날개의 잔치다
날지 못한 풀이며 나무를 보며 깔깔거리며
더 높이 날기 위해 싸우는
새들의 전쟁에 나무등이 터진다
농촌 참새는 알아주지도 않는다
모두들 도시로 날아간다

하늘엔 모두 날개만 있고
땅엔 아무도 없다
모두들 새가 된 세상
떨어진 날개에 모이를 줄 씨앗은 아무데도 없다
새들의 나라에선,






무의식을 동반한 조울증에 관한 보고서



1.
도심에서 버스를 타면
버스 안은 병원 같다.
나사를 풀어 헐얼해진 부속으로 살 수 있는
세계
사십대 중반의 그는
좌절로만 뭉친 시어를 내뱉고 있다.
시선을 의식치 않는 몸짓
의식 속에 자신은 없고 꿈 속에서 잠꼬대 하는 것일까
큰 소리 한번 지르곤
낯 뜨거운 욕지거리를 해댄다.
다시 중얼거림의
반복

2.
- 터널을 통과할 때는 창문을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안내방송이 움직이는 병실 속에 울리고
어둠 속에 야수의 눈빛만 옆으로 나란히 한
터널
지금껏 암 같은 좌절덩어리를 토해내는 사내의 투쟁
눈물겹다.
의사는 처음부터 핸들만 진료함으로 생명을 인도하고
환자들의 두런거림
저기 태양이 빛나고 있어

정말, 굴뚝이 숨을 쉬는데
창문이 열리고
사람들 가슴 속에 질실할 듯 눌려 있던 공기가
휭하니 햇살 속에 몸을 던졌다.


입에 거품을 물었던 그가 정류소에서 퇴원했을 때
터널 속에서 그와 간통했던 것일까
한 사내 깔깔거리고 있다.
소, 손 끝을 부들부들 떨면서

3.
이십 세기의 흑사병이라 일컽는
후천성 희망 결핍증
신이 인간에게 내린 경고라 했다.
머리로써 적당히 눈치를 보며 계단 오르지 못한
낙오된 패잔병에게 발병되는
천천히
머리부터 가슴, 다리끝까지
음흉한 사회에 버틸 수 있는
면역체를 죽이는
마침내
직장을 잃고, 자신을 잃고, 가정까지 파괴시키는,




컴 퓨 터 . 1



모델 NO. K666
누군가 입력한 그 황홀한
바이러스의 기생으로
신과의 전쟁은 시작됐다
나약한 인간과 기계의 대리전으로

K666 최대 무기는 첨단으로 무장된
사각의 얼굴
마주보면
투기가 솟는다
힘찬 두드림
프린트기는 경쾌한 전자 비명을 지르며
이슬방울 같은 글을 내뱉는다
땅바닥에 쫓긴 발빠른 구두에게
쉴 수 있는 여유를 주며
안락한 망각의 세계로 초대 한다

짜릿한 전류에 혓바닥이 굳어지면서도
디스켓을 삼킨 위장된
미소
마주칠 때마다
프로그램으로 비대해지는 모니터에
압사당한 것 같은 황홀함
두렵다
네 눈에 나는 최면든 것은 아닐까
머리가 텅 빈
마침내 세상의 옷을 벗고
환상의 프로그램 속에 풍경을 이루는 기판 같은

전원을 차단하면 싸늘하게 식어 금방 촛점 잃은
모니터, 믿어지지 않는다
그 서늘한 주검





컴 퓨 터 . 2



실타레처럼 얽혀진 머리 속의 기하를 나눌
꿈의 사각 모니터
실 끝을 찾아 바늘귀에 넣는다
그림을 그린다
펜 끝이 춤을 출 수 없는
숨가쁜 영상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머리가 비어지는 나는
자율신경이 마비됨을 느낀다
잠 자다가 가위 눌린 채
다리가 퇴화된 파충류의 관절로 꿈틀거리지만
초침에 쫓긴 삶
또 하나의 힘을 나눈다
눈 앞에 선 거대한 기억덩어리
나는 손가락만 뱀의 혀처럼 진화되는 것은 아닐까
검은 디스켓의 모이로 깔끔한 언어의 알을 낳는
초록 모니터의 자궁 속에 정자를 입력시키는
컴퓨터 중독자의 바들바들 떨고 있는

너 아니면 나는 살아날 수 없다.
이 인간은, 두 둘이, 아 아니다


도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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