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역에 내려 길을 걷다가 길 잃은 개를 보았습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선한 눈빛이란, 그 눈빛으로 나에게 뚜렷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내가 갑자기 개가 된 것은 아니겠지?) 아아, 동물들도 눈으로 말을 하구나! `몸 바쳐 재롱 피울께요. 깨끗하게 살께요. 저의 주인이 되주세요.' 그때부터 그는(?)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신호대기 중에는 서고, 횡단 보도를 건널 때는 같이 뛰고 촐랑거리면서 연신 꼬리를 흔들며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였죠. 그러기를 이십 여 분, 빌딩 이 층에 숨어 한참을 지켜보니 꼬리를 내리고 풀죽은 채 타박타박 떠나는 개의 뒷 모습을 확인하고 길을 진행했습니다. 왠지 죄지은 듯한 생각과, 풀죽은 개가 뒤쪽을 힐끔보며 목적없이 걷는 모습이 교차되면서 울컥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분명 떠돌이 개는 아니였습니다. 얼마전까지 안정된 곳에서 주인을 위해 빈공간을 채워주던 애완견일꺼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버림을 받았든, 길을 잃었든 지금 기다려주는 이는 없습니다. 야생의 도시에 떨어진 한순간,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그 눈망울은 헤쳐 나가기가 힘들 것입니다. 연습도 없이 이게 왠 날벼락일까요. 그리움이 지칠 때 생존의 법칙은 섬득하게 다가오지요. 그 선한 눈망울이 표독스런 경계의 눈으로 바뀔 때 옛주인의 이모나, 삼촌도 경계해야 될 것입니다. 기다려주는 보금자리가 없는 한겨울의 칼바람을 또 얼마나 세차게 온몸을 때릴까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눈길의 외면이 기다릴까요. 그가 슬픈 것은 오직 기다려 주는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휘휘휭 칼바람이 섬득섬득 공간을 베어갈 때의 고통을 이기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는 이가 있다고 느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니면 야생의 도시에서 홀로 살아남는 길 뿐입니다.
지금 나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책장에 몇 년 씩 눈길을 주지 않던 책을 펼치니 후드득 활자가 날아 오릅니다. 먼지가 놀라 나뒹굴어집니다. 잠들지 않고 기다려 주는 나의 영혼들, 오늘 만큼은 묵은 나의 기다림들을 애무할 것입니다. 손길로 손길로 그대를 느낄 것입니다. 눈빛으로 눈빛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대, 길을 가다가 그때 그 개를 만나면 혹, 눈빛이 야성에 젖었더라도 눈길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전해주세요 나는 아직도 너의 선한 눈빛만 기억하고 있다고 내 가슴은 아직 살아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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