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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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솔길 스스로 숲이되는 -장기근의 시세계(하남문학 4집에서)-
  글쓴이 : 날짜 : 04-08-28 19:24     조회 :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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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스스로 숲이되는,
- 장기근의 시세계 (하남문학 4 집에서)


인터넷 공화국에서 시문학은 무엇으로 정권을 유지해야 하나, 수 많은 시인들의 명제가 아닌가 싶다. 시인은 느껴야 하고 그 느낌을 언어로 노래했을 때 마른 가슴에 따스함으로 울려야 한다. 느낌이 허물어진 시대, 그저 앞만 보며 사냥해야 하는 야생에 세계에 사는 인간은 점점 눈빛만 빛난다. 초병처럼 경계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이 현실에서 좌절함과 동시에 희망을 찾는 것이 시인이다. 그 희망의 출발선상은 "현실인식"이다.
숲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나무로 상징된, 움직이지 않는 생명의 존재는 지금, 흔한 그림이다. 동네 어귀 야산엔 그림자들이 하나 둘 들어 갔고, 이내 나오지 못하는 판화로 남겨졌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때 그 숲에 그림자들이 매몰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다.

k는
약수터가 사형선고 받던 날
오솔길 스스로 숲이 되는 것을 보았다.
차가운 약수는 자신이 솟아왔던
돌 틈으로 다시 들어가고
무거운 물통 들고 내려왔던 사람은
정수기로 숲의 소리 듣는다.

잡풀들이 삼킨 발자국
내 키만큼 자란 싸리나무 곁가지들
발바닥을 타고 전해진 물컹한 땅

길게 줄서서 기다렸던 갈증이
회귀하듯 올라와 목마른 빈 물통
방울방울 아쉬운 시선만 담는다.

회색 건물 틈 사이로 떨어지는
정화되지 않은 잿빛 햇살 한 모금
단숨에 들이키고 새벽부터 늘어서서
키 큰 빌딩에 물 받아 가는 사람들
-장기근 <명예퇴직> 전문-

그의 시 무대는 `일상'이다. 장시인의 시 `명예퇴직'은 현실 속에 매몰되어 버린 일상을 인식하고 존재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독자에게 감동을 전이시키고 있다. 그 전이의 주체는 정확한 현실인식과 화자의 냉철한 보고자적 진술인 것이다.
잡풀들이 삼킨 발자욱 / 내 키만큼 자란 싸리나무 곁가지들 / 발바닥을 타고 전해진 물컹한 땅
하루 아침에 그 땅을 밟아야 하는 현실은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겨운가. 이 시 `명예퇴직'에서 우리는 `살아남아 존재하는 이의 아픔'을 저음으로 노래하는 장시인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다.
회색건물 틈 사이로 떨어지는 / 정화되지 않은 잿빛 햇살 한 모금 / 단숨에 들이키고 / 새벽부터 늘어서서 키 큰 빌딩에 물 받아가는 사람들
약수터를 잃은 사람과 `빌딩'의 약수터에서 `약수'를 받는 사람의 동일성의 세계는 많은 울림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또 한 편의 시에서 현대시인의 `아픈 인식'을 느낄 수 있다.

몇몇은 눈치 채고 떠났어
나무가 있고 풀이 있지만
교묘하게 산으로 포장했을 뿐
팔 다리마저 끊어져
자라지 않는
-중 략-
도로 속에 수감된 섬은
비상하는 날개를 원해
꿈꾸는 탈옥을 위해
-장기근 <섬에 갇힌 너구리> 中-

현실의 바람에 밀려사는 현대인에 있어서 밟고 뛰는 이 곳이 `섬'이라는 것은 처절하다. 다도해처럼 온 땅이 섬으로 되 있지만 섬은 파도를 외면한다. 파도는 더 이상 낭만의 소리가 아니다. 허리를 베는 칼날일 뿐이다. 팔, 다리마저 끊어진 섬에겐 스르르 다가와 때리는 파도는 공포요, 절규의 소리다. 현실의 섬에 갇혀버린 현대인의 삶을 나타낸 이 시에서 홀로 수감된 이 시대의 시인들의 고독함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의 이상까지 채우지 못하는 가치관이 혼돈된 이 사회에서 장시인의 이상은 꿈꾸는 탈옥을 위해 현실의 족쇄를 끊임없이 풀고 있는 것이다.

삭정이 끝에 메달린 마지막 잎새
흔들리지 않는 바람을 업고
얼레에 묶인 하나의 가는 줄로
힘겨운 투쟁을 한다.
느슨하게 풀고 당기는 반복의 몸짓으로
허공에 꿈을 풀어놓고
팽팽한 긴장으로 되돌아오는 짜릿함
희망을 안고 위태한 날개짓 할수록
힘은 더욱 손끝에 모아지고
빠르게 바람을 깨우며 달리면
꿈은
높이 솟구치며 달아나 통제선을 뚫고
나머지 질길 끈만 뒤엉켜
추억을 감는다.
-장기근 <연> 전문-

스스로 삭정이 끝에 매달린 잎새가 부활을 염원한다. `연'은 추구하고자 하는 `자아'의 표현이다. 시작 행위가 상황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표현의 등식이라면 `연'은 그 절묘한 등식이자 해답이다.
얼레에 묶인 하나의 가는 줄로 / 힘겨운 투쟁을 한다. / 느슨하게 풀고 당기는
반복의 몸짓으로 / 허공에 꿈을 풀어놓고 / 팽팽한 긴장으로 되돌아 오는 짜릿함

시인은 현실과의 투쟁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주검이 섬처럼 동동 떠 있는 도심의 상황에서 반복의 몸짓으로 현실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에서 낙오하지 않는 것이 사회의 `건강함'을 이루는 것이라는 걸 화자는 `연'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꿈으로 상징된 연이 높이 솟구치며 달아나 통제선을 뚫고 마음껏 유영할 때 뒤엉킨 질긴 끈을 감으며 추억을 감기 위해...


- 박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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