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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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택의 어린시절이 기억나지않는다를 읽고
  글쓴이 : 날짜 : 02-09-24 16:53     조회 :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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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현대문학상 수상작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 김기택


창문이 모두 아파트로 되어 있는 전철을 타고

오늘도 상계동을 지나간다.

이것은 32평, 저것은 24평, 저것은 48평,

일하지 않는 시간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또 창문에 있는 아파트 크기를 재본다.


전철을 타고 가는 사이

내 어릴 적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엇을 하며 놀았을까?

나를 어른으로 만든 건 시간이 아니라 망각이다.

아직 이 세상에 한 번도 오지 않은 미래처럼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상상해야 한다.

지금의 내 얼굴과 행동과 습관을 보고

내 어린 모습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저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어릴 적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하듯이

기억은 끝내 내 어린 시절을 보여주지 못한다.

지독한 망각은 내게 이렇게 귀띔해준다,

너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 얼굴이었을 거라고.


전철이 지하로 들어가자

아파트로 된 창문들이 일제히 깜깜해지더니

또 다른 아파트 창문 같은 얼굴들이 대신 나타난다.

내 얼굴도 어김없이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어릴 적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김기택 : 1957년 안양에서 태어났고, 1989년 『한국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를 읽고

"지금의 내 얼굴과 행동과 습관을 보고 내 어린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강남과 강북이 수십 년 개발을 거쳐 완전 성형 됐다. 어릴적 뛰놀던 고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파트 창가만 존재 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찾을 수 없는 추억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지성은 얼마나 슬픈가.
기억의 모티브가 계속적으로 잘라질 때마다 작가는 망각한다. 결국 망각의 연속성에 나이만 먹었을 뿐이다. 지금의 내 얼굴에는 어린시절의 `순수'가 없다. 김시인은 지금의 모습에서 어린기억의 모습을 유추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다.

``지독한 망각은 내게 이렇게 귀뜀 해 준다.
너는 태어났을 때 부터 이 얼굴이었을 거라고.''

이 시대의 사람은 어릴적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 작가는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 얼굴은 아파트 창문에 끼어있는 얼굴이다. 마치 초상화처럼....

<박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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