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을 앗아간 그녀를 생각해 봅니다.
내 모든 것을 바쳤을 때 나는 그녀와 사귈 수 있었고 그녀 가슴의 깊이에 허우적 거리며 익사의 위험한 곡예도 황홀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시"란 이름을 붙여줬고 곧 그녀에게 은유와 상징의 옷을 입혀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통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었고 그것은 곧 시인이 보는 시인의 체험이요, 시인의 관찰이며, 시인의 세계입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님, 낙화 중에서
분명,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이 의인화 되어 서경적으로 표현됐을 뿐인데 우리는 시인의 다른 사고를 다른 세계를 읽고 있습니다. 그때 감동의 울림이 잔잔합니다.
길게 꼬리를 문 뚝 안에 고요함이 있어. 가끔 갈대 사이에서
철새들이 날개짓에 정적이 잠깨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비취빛 물결...
처음엔 가을 하늘 한 귀퉁이가 베어져 이 땅에 자기 잡은 줄 알았어
- 졸시, 주남저수지에서 中
시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이름이 없었을 때 표현하는 언어"라 생각됩니다.
저는 주남저수지의 이름을 모르고, 풍경을 표현한다면
"가을 하늘 한 귀퉁이가 베어져 이 땅에 자리잡은 줄 알았어"라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가을하늘 한 귀퉁이는 아름다운 자연이고, 그 자연의 형상은 주남저수지라고 느꼈기 때문이죠. 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시를 쓰는 일은 곧 세상을 살면서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한 사물을 시인만이 갖는 프리즘을 통해언어적 구조물로 형상화 시키는 행위라는 정의 아래 나는 내용보다 아름다움을, 메세지보다 향기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이십여 년 동안 줄곧 시의 향기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시를 통해 시의 향기를 스스로 맡아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런 불만과 욕구 때문에 나는 또 속는 셈치고 시 쓰기를 계속하는게 아닌가 싶다."
- 시인, 임영조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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